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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시오스
「철가면」을 번안한 작품으로 1920년대 초·중반에 가장 많이 읽힌 추리소설 중 의 하나였다. 이후 1920년대 중반 방정환23)이 몇 편의 아동 추리소설을 발표하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창작 추리소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1908년 이해조의 「쌍옥적」이후, 창작 추리소설은 1920년 『조선일보』에 실린 「박쥐우산」과 불 교 잡지 『취산보림(鷲山寶林)』에 게재된 「혈가사(血袈裟)」24)가 나올 때까지 아 직 발견된 것이 없다. 또한 1920년대 「박쥐우산」이 발표된 후 1929년 『신민』에 단정학의 「겻쇠」가 실리고 1931년 ‘장편탐정소설’이란 제명 아래 최독견의 「사형수(死刑囚)」(3회로 발표된 미완의 작품)가 연재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미약했 다. 채만식, 김동인, 김내성에 의해 1930년..
리 잡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 추리소설16)은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 신문발간과 더불어 시작되었 다고 할 수 있다. 즉‘1878년을 전후하여 독부전(毒婦伝), 도둑 이야기, 정치암살사 건 등 탐정취미가 풍부한 범죄연재물들이 통속소설 작가들에 의해 신문에 연재’17) 되면서 일본 추리소설의 서막이 열렸다. 이후 1880년 후반에 들어서 라쿠코(落語:ら くご, 만담)가(家)와 야담가인 산유테이 엔초(三遊亭円朝, 1839~1900)의 영향을 크게 받은 구로이와 루이코(黑岩 淚香, 1862~1920)의 등장으로 서구의 추리소설이 본격적 으로 번역·번안되어 소개된다. 그는 처음으로 영국의 소설가 휴콘웨이(Hugh Conway)의 「어두운 나날」을 번역하여 1881년 1월 『곤니치 신문(こんにち新聞)』 에 「법..
순수·본격문학에서 소외되었던‘장르문학’7)(추리소설, 공상과학소설, 연애소설, 무협소설 등)에 대해 독자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변화로 문학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대중소설(추리소설) 장르를 외면할 수 없다는 자성(自省)이 일 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대중소설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 으며 비로소 추리소설도 한국문학 연구의 자장(磁場) 안으로 편입되었다. 서구에서 추리소설은 1841년에 『그래함(Graham)』지에 에드가 알렌 포우(Edgar Allan Poe)가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발표8)한 이래로 1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 세계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르소설이다. 추리소설은 19세기 후반 부터 시작된 ‘산업혁명, 과학혁명, 인쇄혁명, 자본주..
I. 서론 이 논문은 한국 근대 추리소설1)에 나타난 대중성(popularity)과 근대성(modernity) 의 특징을 193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추리 소설 연구자들이 추리작가를 논하든, 추리작품을 논하든, 추리장르의 형성과정을 논 하든 추리소설에 대한 언급에서 자주 등장한 것이 바로 대중성과 근대성이다. ‘정탐소설(偵探小說)’이란 장르 명으로 씌어 진 이해조의 「뎡탐소설 쌍옥적」2) 을 기점으로 하더라도 한국 문학사에서 대중소설의 하나로 추리소설은 100년이 넘 었다. 따라서 추리소설은 한 세기의 역사를 가진 장르소설(Genre Fiction)이다. 지금 까지 추리소설은 끊임없는 변종(탐정소설, 범죄소설, 스릴러 소설, 스파이소설 등)을 생산하면서 폭넓은 독자..
대법원에 따르면 저작권의 보호대상은 표현이며, 실질적으로 유사한가는 표현 에 해당되는 독창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181) (나) 이 시의 표절 여부에 관한 검토 이 시의 전문을 그대로 살펴보는 경우 NINANANA란 익명의 작가가 다른 시 들의 구절을 인용하였다는 것을 밝히면서 한 편의 시를 작성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문학적 평가에 관해서는 다른 여러 시들의 구절을 인용하지 만, 작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시로 창조하고 있다는 견해와 이 작 품이 단순히 익명작가의 치기 어린 습작품에 불과하다는 견해로 나뉘어 진다. 전자의 견해에 따르면 이 시는 문학작품으로서의 독창성을 갖게 된다고 할 수 관해서는 무한한 상상과 예술적인 창작이 중시되는 문예저작물에 해당되는지 ..
(plagiarism)의 세 가지가 논해지고 있다. 패러디는 대개 어느 한 텍스트만을 패 러디 대상으로 차용하지만, 패스티쉬는 대개 여러 가지 텍스트들의 부분들을 차 용하게 된다. 패스티쉬를 혼성모방이나 짜깁기라고 옮기는 것도 패스티쉬의 이 러한 모방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171) 패스티쉬는 표절과는 달리 문학의 한 기법으로서 논의되고 있다. 자신만의 독 창성을 주장할 수 있을 만한 텍스트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는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떤 텍스트도 다른 텍스트에 대해 원전이나 기원 을 주장할 수 없다. 모든 텍스트는 등가의 텍스트이므로 진품이나 모조의 구분 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혼성모방은 진품을 표절하는 기법이 아니라 모조를 복제해서 또 하나의 모조를 만들어 내는 복사행위..
인터넷 이용자들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다. 자신들이 접한 타인의 작품을 그대로 또는 변형하여 인터넷상에서 배포하기도 한다. 인터넷 환경에서 는 타인의 저작물을 개작하거나 왜곡 또는 변형하는 것이 손쉬워지는 것이 다.165) 저작자들은 자신의 저작물이 개작되어 인터넷상에 올라가 있는 것을 뒤 늦게 발견하기도 한다. 문학작품을 개작하거나 모방하여 인터넷을 통하여 발표 하는 경우 원래의 저작물을 표절한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된다.166) (가) NINANANA의 시의 경우 가상공간은 자유로운 탈영역화된 공간이며, 이 공간의 구성원들에게는 기왕의 문학이 지녔던 가치 체계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일탈 욕구가 숨어 있 다는 견해가 있다.167) 가치 체계의 전복이라는 일탈 욕구가 형식 실험을 통해 극..
요하며, 게임에 관한 법률적 문제라면 게임과 법학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며, 문 학에 관한 법률적 문제라면 문학과 법학에 관한 지식이 필요153)하다. 특히 인터넷으로 연결된 새로운 공간은 기존의 문학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제 공한다. 특히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등장은 독자의 참여라는 실험적 방식을 제공 함으로써 ‘새로운 문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비선형 적이라는 첫 번째 특징이 있다. 비선형성은 하이퍼텍스트가 전통적인 진행형 텍 스트들처럼 선형적인 구조를 가지지 않고 텍스트 구성성분들과 조각 텍스트들로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네트워크에서 텍스트들은 링 크를 통해 서로 결합된다.154) 전통적인 인쇄 문학의 평면 공간에서 입체 공간으 로의 이동은 독자에게 ..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비문학에서는 고정된 텍스트가 없이 언제나 ‘가능태’ 로 잠재해 있다가 구체적 현장에서 현재적으로, 일회적으로 실현이 된다. 구비 문학 텍스트는 현장 속에서 그 성격이 규정되어 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 비문학 텍스트가 많은 이본을 가지고 있음은 이 때문이다. 누가 구연을 하고 누 가 들으며 현지의 분위기가 어떠한가에 따라 텍스트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구비문학의 현장성은 구비문학을 개방적이고 참여적이며 쌍방향의 의사 소통 체계를 갖춘 비선형적 특성을 지니게끔 만든다. 또한 구비문학은 현장의 문학으로서 흔히 복합예술(종합예술)로서 존재한다. 언어 이외에 노래나 몸짓(간단한 동작이나 춤, 연기, 노동, 의식 등)이 함께 결 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예술적인 ..
전개되는 하나의 이야기를 선택해서 본다는 한계를 가진다. 하나의 텍스트는 그것이 통합적으로 즉 일관되고 완결된 그리고 안정적인 것 으로 경험될 때 닫힌 것처럼 여겨진다. 이것이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있어서 결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외견상 무한히 아마도 무수히 계속 될 수 있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결말은 안정적인 결론성, 완결성 혹은 매듭에 대한 느낌과 유사한 무엇인가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142) 본문 중 에 삽입된 링크는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새로운 경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내용에 영향에 미치지 못하는 막다른 길로 이끈다. 그래서 하이퍼픽션이 라기 보다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각으로 세 번 읽는 기존 문학에 흡사하며,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핵심으로 작용해야 ..
풀’을 대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1단계 김수영 시인의 “풀이 눕는 다”에서 출발해서, 2단계에서는 46개의 시구 가운데 “그대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는 풀이”라는 시구가 마음에 들어 그것을 마우스로 클릭했다고 치자. 그러 면 “그대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는 풀이/가난한 이들의 길을 열고”(이제하)라는 온전한 시구가 글쓴이의 이름과 함께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 독자는 ‘잇는 글’ 단추를 선택해 다음 3단계의 글을 읽거나, ‘즉석 비평’ 단추를 클릭해 해당 시구 에대한비평에참가할수있다.다음단계,그다음 단계에서도계속이런방 식으로 읽어 나가면 된다. 또한 이 하이퍼텍스트 시는 각 어절 단위로 하이퍼링 크 되어 독자가 원하는 어절 단위로 선택해 읽어 나갈 수도 있다. 독자의 선택 에 따라서 이 하이..
이처럼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있어서의 독서행위는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곧 글쓰기가 되는 방식으로 인해 그 새로움은 더한다. 작가와 독자는 근본적으로 지금까지의 문학작품에서와는 다른 창작방법이 적용된다. 즉 작품의 생산은 기 본 골격에 해당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의 감상에 독자 가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작품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긍극적으로 하이퍼텍스트는 텍스트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고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이며 이 경우 독자는 텍스트를 형성하기 위해서 독자 또한 저자가 된 다. 독자가 저자가 되는 이러한 읽기 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읽기의 한 예가 될 뿐만 아니라 문학 읽기의 다양성 가운데 하나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 창작의 실제적 예로 본 하이텍스트 문..
되고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네트워크안의 가상공간인 사이버 공간은 실제의 공 간만큼이나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이원의 시에 등장하는 인간은 가상의 공간 안에서 배회한다. 전자사막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가상공간이라는 가상현실을 통 해 보여주는 이원의 시는 감정조차 칩에 의해 조작되는 기계적 인간, 죽음과 삶 이 허공 속에 부유하는 현실에서 주체로서의 실존적 자아를 상실한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시한다. 2) 참여와 실험으로서의 독자 공간 (1) ‘새로운 읽기방식’으로서의 하이퍼텍스트 문학 1 새로운 읽기 방식의 의미 다매체 시대의 정보화 사회에서 문학에 대한 위기는 예견되어왔다. ‘문학의 위기’는 학문체계상으로 보면 ‘인문학의 위기’며 문명사적으로 보면 ‘책 문화, 종이문화의 위기’다. 우리는 이..
사이보그화된 인간의 신체에 대한 상상은 디지털 시대에 개인의 주체적 자율 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음을 자각한다. 고도로 조직화된 디지털 세계는 주 체적 인간을 해체하여 기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원의 시는 현대의 삶과 주체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통해 디지털 문명이 초래한 근원적 문제를 환기 시킨다. 130) (3) 허공에 떠도는 죽음의 공간 이원이 바라본 세계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그 비판적 의식은 그동안 익숙 해왔던 기존의 세계와는 다른 디지털화 된 시대에 대한 우려가 내재해있다. 특 히 가상현실은 나란 존재의 혼란뿐만 아니라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하게 한다. 현실의 세계가 가상공간에 펼쳐진 허상의 세계에 불과할 때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즉 보편적인 경험세계의 질서..
할 수 있는 정신적 , 육체적 해체를 의미한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17인치 모니터가 얼굴을 진공청소기 처럼 쭉 빨아 당겼다 눈코입이 딸려 들어가고 가죽만 책 상의 모서리로 흘러내렸다 미지근한 가죽을 들어 신년 달 력 옆에 걸어놓는다 - 「자화상」일부 자화상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내주는 거울로 많은 시인들 혹은 예술가들은 작품 속에 자신의 의식세계를 표출해 왔다. 이원의 자화상은 기존의 작들이 보 여준 자기인식의 태도와는 달리 섬뜩하고 그로데스크하다. 실존적 인간존재에 대한 성찰의 모습이 아니라 기계화된 인간의 삶에 대한 불안하고도 냉혹한 내면 심리를 반영한다. 이미 인간은 컴퓨터를 켜자마자 주체적 존재감를 상실하는 비 극적 삶속에 놓여 있으며 ‘미지근한 가죽의 실체’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원 에게 ..
터 앞에 있다」)에 불과한 존재이다. 가상현실도 분명 또 하나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이 현실은 네크워크를 통해 연결된 하나의 창으로 동시적 상호 접속이 가 능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접속되어진 나는 정신적, 실재적으로서의 내가 아닌 검색되어지는 나이며 그러한 나란 존재는 계속 클릭을 해야 만이 그 존재성이 실현될 수 있다. 마우스 클릭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야하는 ‘나’ 는 결국 디지털 유목민이 되어 전자 사막을 떠돌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이다. 이곳에서는 허공을 만질 수는 있어도 서로의 몸이 만져지지는 않습니다 몸 속에 자동 응답기를 설치하고 버튼을 외출로 눌러놓고 나는 한낮의 햇빛 속으로 양을 치러 간다 - 「사막을 위한 변주」일부 - 「사막에서 1」일부 사막이라는 공간은 광활하고 ..
(... 중략 ...) h의 DNA에 내 유전자의 일부를 잘라 붙인 복제아기 신청서를 낼까 오욕칠정을 가진 키가 185cm까지 자라는 사내애 하나와 검은 곱슬머리를 가진 쌍둥이 계집애 둘을 주문할까 증발되기 쉬운 물질인 나를 일몰 무렵의 안락사로 예약해놓을까 -「전자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부 물리적 공간과 사이버 공간을 비교할 때, 현실세계가 물질적인 공간이라면 사 이버 공간에서 구현되는 가상현실의 세계는 비물질적인 공간이다. 비물질적인 가상공간은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것처럼 의식되는 시 뮬라르크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은 문학의 상상력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즉 전 자 사막은 ‘물질적 상상력이 비물질적 상상력으로 전의’되는118) 가상현실에서의 공간이다. 사이버페이스를 ‘가상공간’이라 부..
기 때문이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의 자기 구원의 노력은 방랑 · 향수 이외에 즐거웠던 과거 를 회상하므로 정신적 안식을 구하고자 하는 데서 찾을 수 있으며 방랑이 새로 운 세계에로 나가려는 탐색행위라면 향수는 화해로왔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의 지와 관련이 있는데115) 기형도에게 있어 과거에 대한 기억은 향수도 추억도 되 지 못한다. 전망 없는 미래와 고통스러운 과거를 함께 품은 자의 절망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전망보다 과거에 고착되어 현실인식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러나 그의 의식은 어떠한 위로나 위안도 되지 못하는 유년의 기억 속으로의 회귀 역 시 불가능함 깨닫는다. 기형도는 어디로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근원적 한계에 절망한다. 기형도는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을 살아내야 했던 짧았던 삶만큼이나 비극적 ..
이러한 유년의 결핍과 상처는 단순한 기억의 고통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검은 페이지가 대 부분이다’. (「오래된 書籍」),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미빛 인생」), ‘나는 불행 하다’(「진눈깨비」)등의 행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조적 현실인식과 비극적 자아의 의식세계의 근원이 된다. 즉 유년은 가난의 공간이자, 상실의 공간이자, 결핍의 공간으로 길이라는 공간을 통해 시적 자아의 의식세계를 엿보게 한다. (3) 절망적 회귀의 공간 기형도의 작품세계를 이끌어가는 핵은 행복의 원초적 세계와 그리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간의 비극적 단절이 빚어내는 시간성에 근거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상실 의식’ 또는 ‘회귀 의식’이라113) 했듯이 기형도의..
이 시는 기형도 시에 나타나는 부정적 공간의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 품이다. 안개가 가득한 방죽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차단되고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고립의 공간이다. 안개는 보이기는 하지만 그 실체가 없는 존재다. 무(無)와 작품의 상징이기도 한 안개는 생/사의 경계인 그 읍의 정경으로부터 피어오른다. 그 읍에 사는 사 람들은 앞선 자들이다. 지워질 때까지 삶의 의미도 모르고 ‘편리한 습관’으로 그 길을 가는 자들이고 물화된 삶에 가려 실존인식 없이 사는 존재들이다.111) 안개 가 음습한 방죽 위로 걸어가는 자들은 긍정적이고 친화적인 존재가 아니다. 낯 설고 서로를 경계해야 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현실의 공간은 ‘쓸쓸한 가축들처 럼’ 안개의 성역에 갇혀 있다가 사라져야 하는 존..
며 출발점과 도착점을 이어주는 진행형의 공간이다. 또한 길을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거나 현실에서의 일탈을 시도한다거나 새로운 희망을 간직하고자 하는 의 지의 공간으로 길은 많은 작품에 존재해왔다. 그러나 기형도의 작품 속에 나타 나는 길은 출발점도 도착점도 불투명한 정지의 공간이며 절망과 부정적 자아의 내면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회한과 탄식과 절망으로 점철된 기형도의 내면은 고독과 우울한 정체성에 빠 져 있을 뿐만 아니라 비극적 상실감에 젖어 있다. 이러한 기형도의 비극적 세계 관의 기저에는 유년의 가난과 상처와 고통이 존재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정서를 통하여 인간존재의 절대적 세계를, 혹은 그리움이나 추억, 현재의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시간의 저편을 향한 존재의 모습을 시적 정서로 끌어안으려 ..
(3) 저물녘, 공존하는 사랑의 공간 조금씩 밝음이 몸을 숨기는 순간 문태준의 시는 발화한다. 눈에 들어오는 사 물들이 서서히 몸을 지우면서 깊은 존재의 내면을 드러내는, 밝음이 어둠으로 스미는 접점의 시간이야말로 문태준의 시가 꽃피는 시간이다. 시간을 추상화시켜 말한다면 낮은 문명의 시간이자 남자들의 시간이나 저녁이 된다는 것은 낮과 밤의 교차, 경계, 밤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화해의 시 간이고 모성의 시간이며 생태학적시간으로 생명의 가치가 모두 다 존재할 수 있 는 시간이며103) 바로 그 저녁 어스름이 피어나는 순간의 시간에 대한 탐미에 그의 시의 특징이 있다.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어와서 ..
흐름에 자기의 존재도 같이 흘러가는 방식으로 그 응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갈참나무의 그림자들이 비탈로 쏟아지고 있다 저 검고 지루한 주름들은 나무 속에서 흘러나왔다 내 몸속에서 겨울 문틈에 흔들이던 호롱불이 흘러나오고, 깻잎처럼 몸을 포개고 울던 누이가 흘러나오고, 한켠 이 캄캄하게 비어 있던 들마루가 흘러나오고...... 낮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꽃을 보내고 남은 나무가 된다 혼(魂)이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질 때가 있으니 응달에, 부엉이의 눈 같기만 한 탱자나무 흰 꽃송이 꽃이 슬퍼보일 때도 있다 쓸쓸함이 머물다 가는 모습은 저런것일까요 - 「그림자와 나무」일부 - 「짧은 낮잠」일부 - 「탱자나무 흰 꽃」일부 - 72 - 산그림자가 서서히 따오기의 발목을 흥건하게 적시는 저녁이었습..
으며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이발에서 저물어 행복’(「역전 이발」)했던 곳이 기 때문이다. 제 몸으로 빚은 열매가 파리하게 말라가는 걸 지켜보았을 나무 언젠가 나를 저리 그윽한 눈빛으로 아프게 바라보던 이 있었을까 팥배나무에 어룽거리며 지나가는 서러운 얼굴이 있었네 - 「팥배나무」일부 말라가는 열매를 달고 있는 팥배나무를 문태준은 바라본다. ‘제 몸으로 빚은 열매가 파리하게 말라가는 걸 지켜보았을 나무’를 보면서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이 있었을까 떠올린다. 그 순간 ‘어룽거리며 지나가는 서러운 얼굴’ 을 만난다. 특별한 장소들이 특별한 기억의 힘을 지니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족 사와의 확고부동하고 장기적인 연고 때문이라면99) 그 서러운 얼굴이란 기억속 의 부모이거나 형제일 것이다. 그림자처럼..
휘파람 소리 일렬로 늘어선 풀들이 깨끔발로 돌아다니고 집집의 지붕마다 귀가 잘려 사시사철 한쪽 나지막한 마을 귀로만 풀들이 피는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압해도를 듣지 못하네. - 「반 . 고흐의 마을 - 압해도 . 8」전문 노향림에게 있어 압해도는 그 섬에서 살았던 실제적인 삶과 연유된 체험적 공 간이 아니다. 적막과 고요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정적의 공간이다. 또한 불길함 과 쓸쓸함이 떠다니는 죽음의 공간이다. ‘사시사철 한쪽 귀로만 풀들이 피고’ ‘일렬로 늘어선 풀들이 깨끔발로 돌아다니는’, 바로 코앞에서 이마받이를 하고 보는 ‘귀가 없는 압해도’이다. 깊고 어두운 내면의 빛깔은 시적 화자의 시선을 바다에서 더 먼 섬으로 확장시키는데 여기서 섬은 실제적 공간으로서의 섬이 아 니라 ..
비가 오면 ‘돌담에는 시간만 피어서 나를 부르는’ 압해도는 시적 화자가 끝내 닿을 수 없는 불가능의 지평 위에 떠 있는 섬이며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과 적막 감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뼈마디 부딪는 소리를 내며 까마귀 우는 압해도는 언 제라도 나와 함께 울고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노향림의 시에 있어서 비는 그 추억의 공간으로 이끄는 시적 대상물이다. 오랜 몸부림이 끝나고 죽음과 같은 고요가 오고 겨울의 긴 계절이 끝나면 몇 작품의 시가 완성되어 나온다고 노향림이 말했듯이94)「봄비 1」,「봄비 2」와 같은 작품에서는 봄과 비라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삶의 과거를 돌이켜 본다. 이숭원은 「봄비 1」「봄비 2」를 신생과 부활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책과 회 한의 의미로 제시되어 있다고 하면서 아쉬움과 추..
대한 인식을 형상화한다. 특히 바다 가까이에서 나고 자란 노향림에게 있어 바다와 섬의 의미는 남다르 다. 이는 노향림에게 있어 정서의 가장 밑바탕이 됨과 아울러 내면의 정경을 묘 사해내는 그의 시세계에서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즉 노향림이 언어로 그려내고 있는 풍경은 사실적 묘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 라 시인의 의식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재편성된 풍경이라 했을 때86) 그가 보여 주고 있는 바다와 섬의 기억은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에도 그러한 상 황을 나타내는 공간에 존재하게 되며 인간이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상상 하는것모두는바로공간이전제될때에발생가능한것이다. 따라서인간이 공간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자신의 존재를..
아니다. 그것은 우주를 염두에 둔 우주와의 교감과 합일을 이룬 자아다. 눈뜨는 시간까지 여기 우주의 자궁 속에 내가 돌아와 누워 있다. 한 송이 꽃처럼.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퉁 내려앉았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잠적」일부 이성선은 인간존재의 통찰을 통해 불가사의한 자연과 우주의 세계를 꿰뚫어 감득하는 직관과 일상의 세계를 맞물리게 하는 능력이 탁월한 시인이며82) 누구 보다도 비극적인 인간적 조건과 우주적 운명을 넘어서고자 노력한 시인이다. 투 명한 영혼으로 우주 속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우주적 존재 하나 하나와 교감하면 서 우주의 경이로움에 자신을 맡긴 시인이다. 탐욕과 이기심에서 휩싸인 사회적 82) 김선학,『새벽꽃 향기-불가사의한 세계와 일상성이 만나는 자리』..
지는 것이 산에 대한 동양적인 관점이며 사유의 근거76)이다. 이처럼 산을 성자 처럼 경배하는 것도 결국은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있기 에 가능한 것이다.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아나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 「백담사」일부 길 따라 굽어 흐르는 물 백 개의 연못에 백 번 얼굴을 비추고 백번 마음을 고쳐야 열리는 山門. 귓가에 넘치는 물소리가 모두 법문이고 가지의 바람소리가 오도송이며 우 거진 쑥대풀과 억새꽃이 다 詩다 ... (중략) ... ..
눈은 내려 마을을 덮고 나를 덮는데 잠들지 않으려고 시를 썼다 대청봉 위에서 맑게 솟는 물을 마시니 티벳 영산 물 한 모금이 줄었다 설악에 엎드린 내가 히말라야 성수를 끌어 마셨구나 설악산 해 지는 모습이 너무 깊어서 가만히 그 아래 서서 올려다보다가 저물어 아름다운 하늘빛에 몸을 기대다 -「설악산 큰 눈」일부 사람이 파묻혀 죽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 설악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잠들지 않으려고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과 마음은 처연하다 못해 슬프다. 문학 이 삶의 상처이자 위안이라면 현실을 떠나 스스로에게 부끄럼없이 살겠다는 다 짐은 그를 산중에서 밤새 시를 쓰며 보내게 한다. ‘설악의 노을을 바라보며 하 늘빛에 기대어 본다거나’, ‘엎드려 히말라야 성수를 끌어 마시는 일’은 이렇듯 - 37 ..